Page 89 - 전주한옥마을 골목길 이야기
P. 89

인성의 본체도 하나로서 성(性)에서 비롯됨을 강조한 유학자. 금재 최병심, 유재 송기면과 더불어 투철한 항일정신으로 전주향교를 지켜낸 ‘호남 삼재(三齋)’중 하나이기도 했다.
남안재는 전주향교 뒷산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고재가 완주 구이에서 서당으로 쓰던 한옥을 옮겨다놓은 것이다. 항일의지를 도모하여 일본으로부터 향교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1931년 일본이 전주향교를 개방하고 향교 주변을 유흥가로 만들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집을 통째로 들어 옮긴 담력이 그의 선비로서의 기개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하여 스승이었던 간재도 그의 호를 ‘심(心)과 력(力)이 남보다 절등하다’ 하여 ‘고재(顧齋)’라 지어준 것 아니겠는가..
고재는 조선시대 선비로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 농사를 짓는, 조금은 특별한 공부를 했다. 찾아오는 문인들이나 후학들에게도 나무를 하도록 하고, 채소를 가꾸게 했던 것. 즉 심성을 기르는 데 있어서는 책을 읽고, 몸을 기르는 데 있어서는 농사짓는 일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안재는 아들 이도형, 손자 이남안, 증손자 이천승에 이르기까지 4대가 대를이어한학을공부한터이기도하다.원래는방두개에집뒤쪽에부엌이 있었던 기품 있는 삼 칸 한옥이었다. 안타깝게도 90년대에 전면 개축되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느 한옥 못지않은 무게와 역사가 느껴지는 것은, 심성을 맑혀 뜻을 크게 한 그의 면모 때문 아니려나.
 불휘깊은나무바람에아니뮐쌔
87





























































































   87   88   89   9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