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주한옥마을 골목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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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장군놀이를 좋아하여 호방하고 활달한 풍모를 지녔던 목조. 장군수(將軍樹) 설화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그 또한 호랑이와 같은 위풍이 느껴진다.
그러나 자만동에서 영원히 살 것 같았던 목조가 토호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전주를 떠나게 되는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목조가 아끼는 기생을 당시 전주목사가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1270년, 결국 목조는 170여 호의 주민들을 거느리고 전주를 떠나 외가가 있는 삼척현 활기리로 옮겨가야 했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하물며 장차 왕을 낼 사람임에는 말해 무엇 하랴. 삼척현에서 목조가 부친 묏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발견한 곳이 꿈에 “이 자리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왕이 나온다.”했다는, 지금의 준경묘 자리였던 것. 만일 그때 목조가 전주를 떠나지 않았다면 후대 조선왕조가 세워지기나 했을 것인가.
본래 제왕을 뜻하는 용은 흩어진 것을 모으고, 옛것보다는 새것을 따른다고 했다. 즉 혁신과 변화를 주관하는 것이 용인 것이다. 풍수에서는 좌청룡 우백호라고 해서 용과 호랑이가 서로 어울려 혈자리를 호위함으로써 명당지(明堂地)가 형성된다고 믿어왔다. 목조대왕과 함께 호랑이와 연결되어 있던 조선왕조의 시작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한다.
전주한옥마을 골목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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