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전주한옥마을 골목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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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산성은 전체 둘레가 1588.3m에 성벽은 약 4m나 된다. 동서축의 길이가 314m, 남북축의 길이는 256m가 되지만, 이곳이 왕궁 터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하지만 ‘옛’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채수백년이어온그쓸쓸함마저보존되어야할터이기도하다.
그나마 성의 명칭과 축성 연대는 건물터에서 발견된 기와 편으로 추정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기와 편에 새겨진 글씨로 보아, 산성이 지어진 당시에는 동고산성이 전주성으로 불리어진 모양이다. 또한‘성(城)’자가 쓰인 기와는 왕궁 터에서나 쓰던 것이다.
이곳이 견훤 왕의 궁성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또 있다. 1980년 처음 산성을 조사할 때 발견된 ‘전주성명연화문와당’이 그것이다. 지름 125cm, 둘레에 38개의 연주문을 두르고 있는 모양새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축성되었다는것을알수있게해준단서가되었던것.
이는 또한 견훤이 전주에 입성하여 후백제를 세운 것과 정확히 맞물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명백해진 견훤 왕궁 터는, 1981년 전라북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후백제 멸망 이후 고려와 이 씨 성을 가진 자들이 왕도를 이루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아니면 이토록 참담한 내분이 일었을 수도 있다.
상주 가은현 사람이었던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출세하여 상주를 다스리는 장군이 된 인물이다. 원래는 이 씨였으나, 나중에 ‘견’으로 성을 삼았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즉 이 씨가 아닌‘완산 견(甄)’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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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골목길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