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전주한옥마을 골목길 이야기
P. 106
●
만암(晩庵) 이상진(李尙眞) 생가 터 회화나무 이야기
사실 이 골목길 터줏대감은 따로 있다. 바로 「학인당」에서 좀더 아래쪽의 만암 이상진 생가 터를 5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다. 애초에 이 나무는 뿌리가 뻗어 집을 상하게 할 것을 염려하여 죽이려 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수백 년을 지나 지금까지도 꿋꿋이 살아남아 빈 터를 지키고 있다. 현재는 시멘트로 지은 창고 건물 담벼락이 커다란 둥치 안으로 쏟아져 내려 몸살을 앓고 있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삼공수(三公樹)라 하여 일반인의 집에는 심을 수 없는 나무였다. 정승 반열에 오를 정도의 높은 벼슬을 지낸 집에만 심을 수 있는 귀한 몸이었던 것이다. 이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데는 이 집에 그만한 인물을 내기 위한 하늘의 인염 됨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암 이상진은 조선왕조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어 전주성을 수성한 인물이다. 또한 호남을 수호했던 충경공 이정란의 증손으로서 정여립 모반사건 이후 전라도 출신으로는 최초의 정승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에서 선정된 청백리 218명 중 몇 안 되는 정승 출신이었으니, 가히 호남을 대표할 만한 선비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회화나무는 삼공수이기 이전에 고약으로 쓰이는 한약재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피부를 치료하는 고약의 원료가 되어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현재 오목대길 인근에서 「원광슈퍼」를 하고 있는 주인아주머니 할아버지가 이 회화나무 뒤편 골목에서 「이 고약」집을 했었다고 한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명운이 달라지는 건 나무도 사람과 같은 모양이다.
104 오늘여기오길잘했다

